책/비문학

<골든아워1> 이국종, 흐름출판

아무나될수없고 2020. 6. 9. 09:54

이 책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가슴이 벅차오르지도, 지나치게 슬프지도 않았다. 상황의 긴박함과 다르게 활자들도 차분해보였다. 피가 쏟아지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장들을 이토록 냉소적으로 볼 수 있다니. 이건 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결과 때문이다.

 

의사들의 노력으로 더 많은 생명을 건진다고 해도 결국은 다 죽는다. 단지 연장할 뿐이다. p.402

 

전부터 병원과 의사, 의사와 환자,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계셨을 때 병원 벽에 기대 가만히 병실을 보고있노라면 너무 평온해 여기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곳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밤사이 침입해오는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나서 몸을 틀기만 하면 보이는 간호사들이 여럿이었고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종종 거리며 돌아다녔지만 그들은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공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만히 앉아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환자들이 적어도 길바닥에서 죽지 않기 위한 연장의 도구일까? 누군가에게 발견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뒤에는 절차에 따라 빠르게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일까? 아무리 수술을 하고 비싼 약을 투여해도 할아버지의 눈앞에 다가온 죽음은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 죽음이 병원을 휘감고 있었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게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의 의사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았다. 연장. 내가 그곳에서 느낀 것은 무의미한 삶의 연장이었고 그 끝은 결국 죽음의 아가리로 이어졌다.

 

한국의 대학병원은 겉만 화려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p.418

 

코로나에 대한 신속한 대응으로 전세계적으로 칭찬을 받았다는 국뽕 뉴스가 넘쳐흘렀던 때가 있었다. 공무원들이 주당 근무시간을 초과해 200시간씩 일하고 누군가는 끝나지 않을 이 사태에 스트레스로 스스로의 목숨까지 내놓고 의료진들이 땀과 피와 눈물을 흘리며 버텨내고 이가 갈리는 동안 누군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외치며 축제판을 벌였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왜 자기네들이?

 

정치에 대해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되놈은 정치고 곰은 정책의 이상과 시행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꾸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녀야 하는 현장 근무자들이다. 재주는 누가 부리고 돈은 누가 챙겼더라. 돈 안 되는 사업을 이만큼 봐줬으니 된 것 아닌가, 하는 그 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돈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사람 목숨이 중요합니까? 대부분은 당연히 사람 목숨이죠. 그걸 질문이라고 합니까? 라고 반색할 것이다. 가장 역겨운 것은 그 지점이다. 대부분 속으로는 돈을 택하니까. 겉으로는 도덕적이면서 뒤로는 주머니에 돈 챙기는 것. 사람 목숨을 살린다는 거룩한 사업을 실행하는 척 하면서 아무런 지원도 없는 그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 재주는 의사가 뛰고, 이렇게 펼쳐진 화려한 슬픔과 감동과 눈물의 쇼로 벌어들인 돈은 다 다른 사람 주머니로 흘러들어간다. 그게 현실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래서 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의사는 죽음의 구렁텅이로 빨려들어가는 환자를 삶의 경계로 끌어당기지만 언제나 삶이 선이요, 죽음이 악인 것은 아니었다. 결국 그러한 모든 과정은 도덕적인 경건한 마음가짐이나 봉사정신만으로는 해낼 수 없고 돈과 값비싼 약제와 돈을 먹어치워대는 비싼 장비가 필요했다. 살아낸 환자들은 때로 돈을 먹어치우는 기계가 되어 적자라는 두 단어로 의사 앞에 날아와 앉았다. 그런데도 살려야 하나? 대부분은 위험한 현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갚을 여력이 없었고 그건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살리지 말아야 하나? 교통사고가 나서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야 합니까? 라고 물으면 다들 네, 라고 하는데 왜 그 사업은 그토록 외면받을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의우선순위는 사안의 중요성보다 누가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동의하느냐에 달려있다. p.150 시행해야 하는 사업이 너무나 많아서? 그렇다면 적어도 솔직하게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생명에 우린 관심없습니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돈이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말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보여지는 겉치레만 화려하게 치장하려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너무 어이가 없고 웃겼다.그리고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회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현실적이면서도 슬펐다.